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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좌식 문화의 재탄생, 로우소파와 리빙 브랜드

by usunnyday 2025. 11. 11.

'앉는다'는 행위는 단순한 동작 같지만, 문화와 생활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철학을 품고 있습니다.
서양의 소파가 몸을 감싸는 '의식적 휴식'을 상징한다면,

일본의 로우소파(low sofa)는 자연스러운 자세로 공간과 하나 되는 무심(無心)의 휴식을 의미합니다.

 

이 글에서는 일본 모던 리빙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바닥 중심의 휴식 문화'와 이를 반영한 가구 디자인의 미학,

그리고 이를 이끌어온 대표 브랜드들의 철학을 깊이 있게 살펴보려 합니다.


일본 좌식 문화의 재탄생

일본의 주거문화는 오랜 세월 바닥 중심으로 발전했습니다. 서양이 의자와 테이블 중심의 입식 생활을 고수했다면, 일본은 좌식 생활을 통해 몸과 공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형태를 선택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의 경계를 허물고 조화롭게 머무는 것"이라는 일본적 미의식(和の美学, 와노비가쿠)에 기반한 생활철학이었습니다.

 

전통적인 다다미(畳) 위의 생활은 무릎을 꿇거나, 다리를 접고 앉는 방식을 통해 바닥이 곧 '가구'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했습니다. 이러한 좌식 문화는 현대에 와서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현대 건축과 결합하며 '로우 리빙(Low Living)'이라는 새로운 양식으로 재탄생했습니다.

 

현대 일본의 거실은 낮은 천장, 넓은 창, 수평적 시선구도를 중심으로 설계됩니다. 로우소파는 이런 공간 안에서 시각적 안정감과 심리적 여유를 제공합니다. 높이가 낮을수록 천장이 더 높게 느껴지고, 공간이 넓고 평온하게 확장되는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구조는 단순히 인테리어 미학의 차원이 아니라, "조용히 머무는 삶"이라는 일본적 시선의 반영이기도 합니다.


로우소파

거실에 놓여진 로우 쇼파 이미지

로우소파의 본질은 '겸손한 형태, 깊은 안락함'입니다. 시트의 높이는 보통 25~35cm 정도로, 일반 소파보다 10cm 이상 낮습니다. 이로 인해 사용자는 완전히 기대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몸을 맡길 수 있고, 다리를 접거나 바닥에 닿게 두는 등 다양한 자세로 쉴 수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신체의 긴장을 완화시키고, 장시간 머물러도 피로감이 덜한 것이 특징입니다.

 

일본의 로우소파는 단순히 낮은 형태의 가구가 아닙니다. 그 안에는 "공간을 비우고, 시선을 낮추는"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이는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安藤忠雄)의 콘크리트 주택이 보여주는 '여백의 미(間, Ma)' 개념과도 깊이 닿아 있습니다. 높이를 낮춘다는 것은 공간의 중심을 인간이 아닌 '자연'에 두겠다는 선언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로우소파는 '모듈형 구조’로 발전해왔습니다. 일본 가정의 평균 거실 면적이 20㎡ 내외로 비교적 작기 때문에, 소파는 공간을 분할하기보다는 유연하게 변화할 수 있는 구조로 설계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일본의 소파는 좌석을 추가하거나, 등받이를 접어 바닥형 쿠션처럼 사용할 수 있는 모듈형 모델이 이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MUJI(무지)의 "체어형 소파(Feather Cushion Sofa)"좌식과 입식을 오가며 다양한 자세에 대응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커버를 분리세탁할 수 있고, 내부 쿠션은 리사이클 폴리에스터를 활용해 지속 가능성까지 고려한 디자인입니다.

 

또 다른 예로, NITORI(니토리)의 "N-Sleep Relax Low Sofa"는 쿠션과 등받이를 완전히 분리해 다양한 형태로 조합할 수 있는 구조를 가졌습니다. 작은 공간에서도 온 가족이 편히 기대어 쉴 수 있도록 설계된 이 소파는, 일본의 평균적인 주거 구조를 충실히 반영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리빙 브랜드

일본의 현대 가구 브랜드들은 로우소파를 중심으로 '공간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해 왔습니다.그들의 디자인에는 늘 "조용하지만 강한 정체성"이 흐릅니다. 오늘날 일본을 대표하는 모던 리빙 브랜드의 로우소파들의 특성을 살펴보겠습니다.

 

Karimoku(카리모쿠)
1940년대에 목공방으로 출발한 카리모쿠는 오늘날 일본을 대표하는 프리미엄 가구 브랜드입니다. 그들의 "Karimoku 60 K Chair" 시리즈는 1960년대 미드센추리 디자인의 감성을 일본식 좌식 구조에 녹여낸 작품으로, 낮은 좌석과 깊은 시트, 두꺼운 쿠션을 통해 안락한 착석감을 제공합니다. 이 제품은 모던함 속에서도 목재의 질감이 살아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Hida Sangyo(히다산교)
100년 전통의 히다산교는 일본 북부 기후현 히다 지방의 목공예 전통을 계승하는 브랜드입니다. 그들의 로우소파 "森のソファ (Forest Sofa)"는 히노키(편백) 프레임과 천연 리넨 패브릭을 결합해 '숲 속에 앉아 있는 듯한' 편안함을 제공합니다. 이 디자인은 전통 목재의 향과 감촉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현대 주거공간에 어울리는 미니멀한 형태를 지녔습니다.

 

ACTUS(악투스)
ACTUS는 일본 내 북유럽 라이프스타일을 가장 잘 구현한 브랜드입니다. 그들의 "Five by Five Low Sofa Series"는 이탈리아 가죽과 일본적 낮은 구조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디자인으로, 서양의 미드센추리 감성과 동양의 여백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습니다. "앉기보다 머무는 소파"라는 문구가 이 브랜드 철학을 잘 설명합니다.

 

Rigna(리그나)
리그나는 일본의 젊은 세대에게 인기 있는 온라인 디자인 가구 브랜드입니다. 그들의 "GRVA Low Modular Sofa"는 좌식/와식/입식을 모두 지원하는 다기능 구조로, 일본의 현대 아파트 구조와 라이프스타일에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이 소파는 '거실을 위한 가구'가 아니라, '생활 그 자체를 담는 구조물'로 설계된 점이 인상적입니다.


로우소파는 단순히 높이가 낮은 가구가 아닙니다.
그것은 시선을 낮추고, 몸의 긴장을 내려놓으며, 자연스레 공간과 하나 되는 '태도'이자 '철학'입니다.
바닥에 가까울수록 사람은 느리게 움직이고, 자연의 소리와 자신의 호흡에 더 귀 기울이게 됩니다.

 

이러한 미학은 지금의 일본뿐 아니라, 한국·대만 등 동아시아 전반의 공간 트렌드에도 깊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의 2030 세대는 '로우소파 리빙'을 통해 시각적 여백과 정신적 여유를 함께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일본식 인테리어의 유행이 아니라, 현대 도시인들이 "조용히 쉬는 법"을 배워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결국, 일본의 로우소파 문화는 공간을 꾸미는 방식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입니다.
바닥 가까이에서 세상을 바라보면, 작은 것들의 질감과 온기가 보입니다.
그 안에서 진정한 휴식의 형태가 완성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