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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J. 웨그너와 Wishbone Chair, 덴마크의 목공예 정신의 정수

by usunnyday 2025. 11. 6.

20세기 가구 디자인의 흐름을 이야기할 때, 덴마크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기계가 대량생산의 상징이던 시대 속에서도, 덴마크 디자이너들은 사람의 손과 감각을 신뢰했습니다.

그들은 나무 한 조각에도 온기와 철학을 담으며, 인간이 편안함을 느끼는 형태를 만들어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덴마크 디자인의 황금기를 이끈 건축가이자 장인 '한스 J. 웨그너(Hans J. Wegner)'

그의 대표작 'Wishbone Chair(위시본 체어)'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위시본 체어


한스 J. 웨그너 Hans J. Wegner의 등장  

20세기 중반, 북유럽은 새로운 미학의 중심으로 떠올랐습니다. 단순함과 기능미, 그리고 수공예의 온기가 공존하는 ‘덴마크 모던(Danish Modern)’의 시대가 열렸던 것입니다. 그 중심에는 한스 J. 웨그너 (Hans J. Wegner)가 있었습니다.

 

1914년 덴마크 남부 퇴네르에서 태어난 웨그너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목공소에서 나무를 다루며 자랐습니다. 그는 나무의 결을 읽고, 손끝으로 온도를 느끼며, 사람의 몸을 이해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가구는 사람을 위한 조각이어야 한다."

이것이 그의 평생 철학이었습니다.

 

웨그너는 단순히 예쁜 가구를 만드는 디자이너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기능과 형태, 예술과 장인정신의 교차점을 찾는 탐구자였습니다. 1940년대 후반, 그는 덴마크 가구 공방들과 협업하며 ‘덴마크 모던’의 정신적 기둥으로 자리 잡았고,결국 1949년, 그의 철학을 완벽히 구현한 한 의자를 세상에 선보입니다. 그것이 바로 Wishbone Chair, CH24 모델입니다.


위시본 체어 Wishbone Chair

웨그너는 Wishbone Chair를 설계할 때 동양의 전통 의자, 특히 중국 명대(明代) 관료 의자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등받이와 팔걸이는 하나로 이어진 유려한 곡선을 띄며, 의자 중심에는 인체를 닮은 'Y'자 형태의 구조체가 있습니다. 이 구조 덕분에 의자는 시각적으로 가벼워 보이지만, 구조적으로는 놀라울 만큼 안정적입니다.

 

'Wishbone'이라는 이름은 등받이의 형태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 곡선은 마치 사람의 척추처럼 몸을 지지하고, 팔걸이의 곡면은 자연스럽게 팔을 감싸며 앉는 사람에게 편안한 휴식을 제공합니다. 이 모든 곡선은 수십 번의 시도 끝에 완성된 결과였습니다.

 

하나의 Wishbone Chair를 완성하는 데는 100개 이상의 세부 공정이 필요합니다. 특히 시트 부분은 '페이퍼 코드(paper cord)'라 불리는 종이끈을 120미터 이상 손으로 직접 엮어 만듭니다. 이 종이끈은 가볍지만 내구성이 뛰어나 시간이 지나도 본래의 형태가 유지되며 통기성까지 좋습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장인의 손길이 곳곳에 닿은 덕분에 의자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단단하고 아름답게 변합니다.

 

목재 부분은 오크, 비치, 월넛, 체리 등 다양한 소재로 제작되며, 각각의 나무가 가진 색과 결에 따라 전혀 다른 무드가 느껴집니다. 나무 표면을  자세히 보면 나무 본연의 질감이 잘 느껴지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천연 오일이나 비누 마감으로 마무리해 나무 본연의 질감을 살리는 덴마크 디자인의 전통적인 방식입니다. 그래서 Wishbone Chair는 같은 모델이라도 모두 다른 개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덴마크의 목공예 정신

웨그너의 디자인 철학은 한결같았습니다. "등받이의 각도 하나에도 사람의 마음이 달라진다." 그에게 가구란 인간의 몸을 위한 구조물이자, 마음의 안식처였습니다. Wishbone Chair의 인체공학적 곡선은 앉는 순간 바로 느껴집니다. 등을 기대면 나무가 부드럽게 휘어 반응하고, 손을 얹으면 표면의 살아있는 결이 느껴집니다. 그 단단하면서도 따뜻한 감촉이 사람을 편안하게 만듭니다. 이것이 바로 덴마크 장인의 목공예 정신입니다. 기술이 아닌 감각으로 완성된 곡선의 예술, 이 의자는 시간이 지나도 유행을 타지 않습니다. 현대적인  무드의 방에서도, 미드센추리풍 거실에서도, 미니멀한 갤러리에서도 자연스럽게 어울립니다. 공간의 공기와 빛을 흡수하면서도 스스로 빛나는 존재감. 그것이 Wishbone Chair의 가장 큰 미덕입니다.

 

오늘날에도 이 의자는 덴마크 브랜드 Carl Hansen & Søn에서만 생산됩니다. 숙련된 장인들이 여전히 수작업으로 제작하며, 하나의 의자를 완성하는 데 3주 이상이 걸립니다. 자동화의 시대 속에서도 사람의 손으로만 완성할 수 있는 그 곡선. 바로 그 점이, 이 의자가 70년이 지난 지금도 ‘현대적인 클래식’으로 불리는 이유입니다.


 

Wishbone Chair는 단순히 의자가 아닙니다. 그것은 나무와 장인, 그리고 사람 사이의 대화를 담은 예술적 구조물입니다.
한스 웨그너는 나무의 결로 사람의 등을 감싸고, 장인의 손끝으로 삶의 편안함을 설계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그 안에는 인간 중심의 디자인, 자연과 기술의 조화, 그리고 장인의 진심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오늘 이 의자에 앉는 순간, 그것은 단순한 착석이 아니라 수십 년의 시간과 손길이 만든 ‘편안함의 철학’ 위에 앉는 것입니다.


 

“좋은 디자인은 사람을 감동시키지 않는다. 다만, 조용히 그 사람의 일상 속으로 스며든다.” — Hans J. Wegner

 


이 한 문장이, Wishbone Chair가 시대를 넘어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를 모두 설명해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