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감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디자인 하우스 HAY
덴마크의 디자인 브랜드 HAY(헤이)는 '스칸디나비아 감성'이라는 말이 지금처럼 대중화되기 전부터,
일상 속 디자인의 가능성을 탐구해 온 브랜드입니다.
단순히 아름다운 가구를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현대인의 생활 방식에 가장 어울리는 형태와 가격을 제안하는 브랜드"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2002년 Rolf Hay(롤프 헤이)와 그의 아내 Mette Hay(메테 헤이)에 의해 설립된 이 브랜드는, 전통적인 덴마크 디자인 유산을 기반으로 하되 그것을 "오늘의 세대가 쓸 수 있는 가구"로 재해석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모토는 단순했습니다.
“좋은 디자인은 부자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누구나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 한 문장은 HAY의 모든 제품 철학을 대변합니다.
HAY
2000년대 초반의 유럽 가구 시장은 고급 브랜드 중심이었습니다. B&B Italia, Cassina, Fritz Hansen 같은 하이엔드 브랜드들이 가구 시장을 지배하던 시기, HAY는 "좋은 디자인을 합리적인 가격으로"라는 다소 이상주의적인 목표를 세웠습니다.
초기 컬렉션은 단순했습니다. 목재, 스틸, 패브릭을 기본으로 한 의자와 테이블, 그리고 몇 가지 소형 오브제들로 구성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덴마크 디자인의 핵심 가치인 '기능성과 인간 중심의 비례'가 살아 있었습니다. HAY는 전통적인 장인 방식에만 의존하지 않고, 산업 생산기술을 디자인 프로세스에 적극적으로 통합했습니다. 이 점이 바로 HAY를 "21세기형 북유럽 브랜드"로 만든 핵심 요인입니다.
HAY는 브랜드가 디자이너를 고용하는 방식이 아니라, 디자이너와 브랜드가 '공동 창작자(co-creator)'로서 협업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이 철학은 곧바로 제품 라인에 반영되었습니다. 대표적인 디자이너로는 Hee Welling(히 웰링), Ronan & Erwan Bouroullec(로낭 & 에르완 부홀렉), Doshi Levien(도시 레비엔), Scholten & Baijings(스콜튼 & 바이징스) 등이 있습니다. 이들은 각기 다른 언어로 HAY의 디자인 세계를 확장시켰습니다.
예를 들어, Hee Welling (히 웰링)이 만든 About A Chair(어바웃 어 체어) 시리즈는 HAY를 전 세계에 알린 대표 제품입니다. 이 의자는 군더더기 없는 곡선, 인체공학적 구조, 그리고 다양한 색상/다리 소재 조합으로 폭넓은 소비층을 확보했습니다. 단 한 종류의 의자에서 시작했지만, 이후 'About A Stool', 'About A Lounge' 등으로 확장되며 HAY의 시그니처 라인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또한 프랑스 듀오 Bouroullec 부홀렉 형제와 협업한 Palissade(팔리세이드) 시리즈는 야외용 가구의 디자인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습니다. 스틸 파이프를 반복적으로 배열해 만든 단정한 선형 구조, 그리고 녹색·회색 등 자연과 어우러지는 색상 조합은 공공 공간, 카페, 정원 등 어디에 두어도 시각적으로 안정감을 줍니다. 이 시리즈는 '야외용이지만 실내에서도 어색하지 않은 가구'라는 평가를 받으며 지금도 전 세계 HAY 매장에서 베스트셀러로 꾸준히 판매 중입니다.
대표 컬렉션
HAY의 대표 제품으로는 위에서 잠시 언급한 About A Chair 시리즈, Mags Sofa, Palissade 컬렉션 이 세 가지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About A Chair (AAC)
AAC는 말 그대로 "의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히 웰링은 일상적이고 단순한 구조 속에서 "앉는 사람의 감각"에 집중했습니다. 등받이와 좌석이 하나의 유선형 쉘로 이어지고, 플라스틱, 패브릭, 우드, 메탈 등 다양한 소재가 결합됩니다. 단순한 조합이지만 공간의 분위기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인상을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AAC는 개인 주거공간은 물론, 오피스, 레스토랑, 호텔 라운지 등에서도 '가장 쉽게 공간에 스며드는 의자'로 꼽힙니다.
Mags Sofa
2007년에 처음 공개된 Mags Sofa는 HAY의 '모듈형 소파 시스템'으로, 브랜드 철학이 가장 잘 드러나는 제품입니다. 정제된 직선, 낮은 프로파일, 두꺼운 쿠션 비례는 "덴마크 디자인의 편안함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결과물"로 평가됩니다. 모듈 조합이 자유로워 다양한 공간 크기에 맞출 수 있으며, 패브릭 옵션도 Kvadrat(크바드라트) 등 고급 소재로 선택 가능합니다. 무엇보다도 그 단순한 형태 속에 시간에 따라 변하지 않는 품격이 있습니다.
Palissade Collection
Bouroullec 부홀렉 형제와의 협업으로 탄생한 Palissade는 야외용 가구의 전형을 바꾼 작품입니다. 스틸 튜브를 일정한 간격으로 배열해 만든 구조는 시각적으로 가볍지만 실제로는 매우 견고합니다. 비/햇빛/습기에도 강하며, 공공공간에서도 수년간 형태를 유지합니다. 그린, 올리브, 그레이, 아이언 컬러 등 자연과 어우러지는 색감 덕분에 '건축적인 미니멀리즘과 자연의 유기적 조화'를 동시에 담고 있는 제품입니다.
덴마크식 합리주의
2018년 HAY는 미국의 글로벌 디자인 그룹인 Herman Miller(허먼 밀러)에 인수되며 세계 시장에서의 입지를 더욱 확고히 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브랜드가 대형 기업에 편입되는 과정에서 정체성이 흐려지는 것과 달리 HAY는 자신들이 추구해 온 철학을 오히려 더 선명하게 드러냈습니다. 그 중심에는 바로 덴마크식 합리주의(Danish Rationalism)라는 디자인 가치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덴마크 디자인은 오래전부터 심플하지만 깊이 있는 기능적 아름다움, 과시하지 않는 품질, 유행에 휘둘리지 않는 미니멀리즘을 지향해 왔습니다. HAY는 이 전통적인 가치를 바탕으로 여기에 현대적인 생산기술과 글로벌 유통 전략을 결합해 지금 세대를 위한 북유럽 디자인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HAY는 고전적인 장인 방식만을 고집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산업 생산 방식의 정밀함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품질과 가격의 균형을 맞추고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대량생산을 선택하더라도 그것이 곧 저품질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HAY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원칙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습니다.
첫째, 가격을 낮추기 위한 공정 표준화
반복 생산이 가능한 구조 설계, 소재 수급 구조 단순화, 부품 모듈화를 통해 효율을 높였습니다.
둘째, 디자인의 디테일은 결코 타협하지 않음
곡선, 비례, 표면 질감까지 덴마크 디자인 특유의 섬세함을 유지하며, 패브릭은 Kvadrat와 같은 브랜드와 협업해 품질을 확보했습니다.
이러한 접근 방식 덕분에 HAY는 합리적인 가격대를 유지하면서도 디자인적 완성도를 잃지 않는 브랜드로 자리 잡았습니다. 바로 이 지점이 HAY가 말하는 덴마크식 합리주의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덴마크식 합리주의는 HAY의 비즈니스 전략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습니다. HAY는 "누구나 좋은 디자인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가격, 유통, 콘텐츠라는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가격 측면에서 HAY는 중간 도매 마진을 줄이고 공정과 부품을 표준화해 생산 비용을 낮추었습니다. 이를 통해 동급 유럽 하이엔드 브랜드 대비 약 30~40% 낮은 가격대를 유지하면서도 충분한 품질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유통에서는 자사 HAY Store뿐만 아니라 IKEA, MoMA Store, Nordstrom, 29CM 등 다양한 플랫폼과 협업해 더 많은 소비자가 HAY를 접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러한 유통 전략 덕분에 HAY는 '특별한 사람만 아는 브랜드'가 아니라 일상 속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는 브랜드로 자리 잡았습니다.
콘텐츠 전략에 있어서 HAY는 제품 사진만을 보여주기보다는, 가구가 놓인 공간의 분위기와 생활 장면을 중심으로 스토리를 구성합니다. SNS와 온라인 비주얼 캠페인에서는 스타일링 된 거실, 주방, 서재 속에 자연스럽게 놓인 HAY의 가구를 보여주며 "이 가구와 함께하는 삶의 느낌"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접근은 특히 20~40대 소비자에게 강하게 어필했습니다. 이들은 단순한 가성비보다 가치감과 취향을 중시하는 세대로, HAY의 컬러, 재질, 단순함 속 디테일을 "일상 속 예술"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HAY는 장식적이거나 과시적인 브랜드가 아닙니다.
그 대신 매일 마주하는 공간에서, 사용자의 삶에 편안한 리듬과 시각적 여유를 만들어냅니다.
덴마크 디자인이 전통적으로 지켜온 '인간 중심의 기능미'에 현대 산업 기술과 합리적 감각을 더해
"일상 속 예술(Everyday Design)"을 실현한 브랜드, 그것이 바로 HAY입니다.
“우리는 사물을 만들지 않는다. 사람과 공간이 더 나은 관계를 맺게 만드는 매개체를 만든다.”
- Rolf Hay 롤프 헤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