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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tra의 아이코닉 체어의 부활과 리이슈 전략

by usunnyday 2025. 11. 10.

가구 디자인의 역사는 단순히 형태의 변화가 아니라, 시대의 사유를 담은 기록입니다.
그리고 그 기록을 '현재의 언어'로 다시 되살리는 일에 가장 능숙한 브랜드가 있습니다.
바로 스위스의 디자인 하우스, Vitra(비트라)입니다.

 

비트라는 20세기 모던 디자인의 대표 가구들을 복원/재해석하며 "디자인의 아카이브를 현재화하는 브랜드"로 불립니다.
이번 글에서는 비트라가 어떻게 과거의 걸작을 오늘의 시장에서 다시 살아 숨 쉬게 만들었는지,

그들의 리이슈(Reissue) 전략과 디자인 철학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Vitra 비트라

Vitra의 이야기는 1950년대 초 스위스 바젤 근교의 소규모 가구 회사에서 시작됩니다. 창립자 빌리 펠바움 (Willi Fehlbaum)은 미국 여행 중 찰스 & 레이 임스 부부의 의자에 매료되어 그들의 디자인을 유럽에 소개하기로 결심합니다. 1957년, 그는 허먼 밀러 (Herman Miller)로부터 유럽 내 독점 생산 및 판매 라이선스를 획득하며 Vitra의 정체성을 확립합니다.

 

즉, 비트라는 '창조'보다 '보존과 재현'에서 출발한 브랜드였던 셈입니다. 이후 비트라는 단순한 제조업체를 넘어, 디자인을 '기록하고 전시하는 플랫폼'으로 발전했습니다. 이 방향을 결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Vitra Campus입니다. 프랑크 게리(Frank Gehry), 자하 하디드(Zaha Hadid), 헤르조그 & 드 뫼롱(Herzog & de Meuron) 등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설계한 건물들이 모여 있는 이 캠퍼스는 "건축과 가구의 실험실"이라 불리며, 비트라의 철학을 시각화한 상징적인 공간이 되었습니다.

 

비트라는 디자인을 단순한 상품으로 보지 않고 "시대를 담은 구조물", 그리고 "다음 세대에 남겨야 할 문화적 자산"으로 바라봅니다. 이러한 명확한 철학은 비트라의 존재 이유라 볼 수 있습니다.


아이코닉 체어의 부활

비트라의 가장 큰 강점은 “아이코닉 디자인의 재생 능력”입니다. 그들은 20세기 거장들의 작품을 철저한 고증과 기술적 복원을 통해 새로운 세대에게 맞게 되살려냅니다. 이 과정은 단순히 예전 도면을 복사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제작 방식과 재료, 사용 목적까지 연구하는 정밀한 디자인 고고학에 가깝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찰스 앤 레이 임스의 (Charles & Ray Eames)의 Lounge Chair & Ottoman을 들 수 있습니다. 비트라는 원작의 도면과 목재 샘플을 기반으로, 현대 인체 비율에 맞춰 미세한 각도와 높이를 조정했습니다. 또한 1950년대의 합판 생산기술을 재현하면서도 현대의 내열성·내습성을 강화해, 기능성과 내구성을 동시에 확보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제품은 여전히 '1956년의 디자인'이지만, '2025년의 사용자 경험'을 제공합니다.

 

또한 비트라는 장 푸르베 (Jean Prouvé), 버너 팬톤 (Verner Panton), 조지 넬스 (George Nelson), 이사무 노구치 (Isamu Noguchi) 등 20세기 모던 디자인의 핵심 인물들과 그 재단/유족회와 협력하여 정식 라이선스 하에 복각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법적/철학적 정당성'을 바탕으로, 비트라는 "정품 리이슈의 기준"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들의 복각이 단순한 과거 회귀가 아니라 "현대의 감각으로 해석된 역사"라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버너 팬톤의 Panton Chair는 1960년대에는 한정된 플라스틱 성형 기술 때문에 상용화가 어려웠지만, 비트라는 1990년대 신소재 폴리프로필렌을 활용해 완벽한 곡선 구조를 구현했습니다. 즉, 과거의 디자인을 현재의 기술로 '완성'시킨 것입니다.


리이슈 전략

비트라의 리이슈 전략은 단순히 고전 가구를 재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그들의 목표는 "디자인을 살아 있는 유산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세 가지 원칙을 지킵니다.

  1. 정확한 복원(Authenticity) : 원작자의 도면, 재료, 색감, 구조를 최대한 유지
  2. 기술적 진화(Innovation) : 당시 미완성이었던 아이디어를 현대 기술로 보완
  3. 문화적 맥락(Curation) : 복각 제품을 단독 상품이 아닌 '컬렉션'으로 전시

비트라는 리이슈를 '판매'가 아닌 '전시'의 연장선으로 다룹니다. 그들의 Vitra Design Museum은 단순한 쇼룸이 아니라 20세기 디자인사를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교육하는 기관입니다. 여기에는 7,000점 이상의 가구, 조명, 도면이 보존되어 있으며, 각 리이슈 제품은 실제 역사적 문맥 속에서 다시 조명됩니다.

 

또한 비트라는 시대별 트렌드에 맞춰 리이슈 제품을 컬러 팔레트나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재해석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이사무 노구치의 Coffee Table은 현대 인테리어에 어울리는 자연석 컬러 베리에이션을 추가해 과거의 형태 속에 새로운 감각을 불어넣었습니다.

 

이처럼 비트라는 '리메이크'가 아닌 '재해석(Reinterpretation)'을 추구합니다.

Vitra가 판매하는 의자가 전시된 이미지


비트라가 특별한 이유는 그들의 철학이 과거에 머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좋은 디자인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믿음으로 과거의 형태를 현재의 감각으로 번역해내고 있습니다.
그 결과, 70년 전의 의자가 오늘의 공간에서도 여전히 모던하게 느껴집니다.

 

비트라의 리이슈 컬렉션은 단순한 복각품이 아닙니다.
그것은 한 세기의 미학이 현재에 적응하는 방식이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디자인 생태계'의 순환 구조입니다.
가구를 구매하는 행위는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한 시대의 사상을 내 공간에 들이는 일이라는 사실을 비트라는 조용히 일깨워줍니다.

 

"우리는 디자인을 소유하지 않는다. 단지, 다음 세대에게 전달할 책임이 있을 뿐이다."

- 비트라 Vitra -